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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SF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로키, 스트라트, 결말)

by SOPHIE_HOPE_LIFE 2026. 4. 25.

긴 영화를 앉아서 보다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던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지 않나요. 저는 요즘 러닝타임 2시간 넘는 영화 앞에서 좀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용산 씨네드쉐프관에서 베드에 누워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봤는데, 그 불편함이 싹 사라졌습니다. 단차가 높아 앞사람 머리에 시야를 빼앗길 일도 없었고, 2시간 20분짜리 러닝타임이 생각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SF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를 안고 들어갔는데, 그 기대를 충분히 넘겨준 작품이었습니다.

 

로키
프로젝트 헤일메리 연관 사진

 

로키라는 외계 생명체가 특별한 이유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놀랐던 건 로키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SF 영화의 외계 생명체라고 하면 보통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지기 마련인데, 로키는 달랐습니다. 호기심 많고, 감정이 풍부하고, 심지어 파트너인 에이드리언을 질투까지 하는 존재입니다. 거미를 연상시키는 외형이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그냥 귀엽다는 생각만 남았습니다.

로키의 생물학적 설정은 상당히 정교한 과학적 추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원작 작가 앤디 위어는 로키의 고향 행성 에리드를 설계할 때 실제 항성계인 40 에리단(40 Eridani)을 참고했습니다. 40 에리단이란 지구에서 약 16광년 떨어진 삼중 항성계로, 당시 과학계에서는 그 주변에 외계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행성의 궤도가 별과 너무 가까워 물이 끓어버리는 환경이라는 점이었는데, 작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리드 행성의 대기압(Atmospheric Pressure)이 매우 높고 물의 온도가 210도에 달하는 설정을 도입했습니다. 대기압이란 공기의 무게가 물체에 가하는 압력으로, 대기압이 높을수록 물의 끓는점이 상승합니다. 그래서 에리드인인 로키에게 뜨거운 물은 그냥 일상입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레이스가 바다가 너무 뜨겁다고 불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직접 보면서 그 맥락이 이해되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로키에게 눈이 없다는 설정도 같은 논리에서 나옵니다. 대기가 워낙 두꺼워 햇빛이 행성 표면까지 닿지 못하기 때문에, 시각(Visual Sense)을 발달시킬 필요 자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각이란 빛 자극을 감지해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 기관의 기능으로, 빛이 없는 환경에서는 진화적으로 퇴화하거나 아예 발달하지 않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지구의 깊은 동굴에 사는 생물들도 눈이 퇴화한 경우가 많습니다.

원작 소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놀라운 가설을 던집니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사실 수십억 년 전 공통의 기원에서 출발한 먼 친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스트로파지(Astrophage)의 조상이 우주를 떠돌며 지구와 에리드 행성에 각각 생명의 씨앗을 뿌렸고, 그것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진화해 지금의 두 존재가 됐다는 설정입니다. 아스트로파지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외계 미생물로, 전자기 복사 에너지를 흡수해 스스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생물입니다. 생김새는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 구조를 공유하는 두 존재가 사실은 혈연이라는 발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로키가 영화에서 특별하게 구현될 수 있었던 데는 숨은 공신이 있습니다. 로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담당한 인형극 배우 제임스 오티스였는데, 원래는 후반 작업에서 유명 배우로 교체될 거라 본인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독은 라이언 고슬링과 제임스 사이에 쌓인 현장 케미를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로키의 목소리 톤과 리듬이 그레이스와 주고받는 장면에서 정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스트라트라는 인물과 영화가 놓친 것들

영화에서 스트라트는 냉혹하고 계산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레이스가 "내가 죽어도 상관없어 보인다"라고 농담처럼 말했을 때도 위로 한마디 없이 당신이 살아 있는 편이 인류에게 더 유리하다고 답하는 장면은 그 캐릭터를 단번에 각인시켜 줍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오히려 이 사람이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악의가 없기 때문에 더 무섭다는 생각이요.

원작 소설에서 스트라트는 더 직접적으로 개입합니다. 그레이스의 기억을 약물로 삭제한 장본인이 바로 그녀입니다. 강제로 탑승시켰을 때 기억이 남아 있으면 분노로 인해 임무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설정이 많이 생략되었는데, 직접 소설의 내용을 접하고 나서 영화 속 그레이스의 혼란스러운 표정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야오 사령관과 일류키나의 죽음 역시 원작에서는 훨씬 무게감 있게 다뤄집니다. 스트라트가 우주 비행사들의 코마 유도(Induced Coma) 여부를 고민할 때 그레이스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레이스가 과학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코마 유도란 의도적으로 의식을 억제해 신진대사를 최소화하는 의학적 처치로, 장기 우주 비행에서 자원 소모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구상된 설정입니다. 문제는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이 내려졌고, 두 사람은 끝내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에서 이 맥락이 생략된 점이 아쉬웠던 건 사실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 장면이 살아 있었다면 그레이스의 죄책감이 훨씬 입체적으로 전달됐을 것입니다.

스트라트 역을 맡은 산드라 휠러가 파티 장면에서 부른 해리 스타일스의 '사인 오브 더 타임즈(Sign of the Times)'는 촬영 하루 전날 고른 곡이라고 합니다. 작별 노래를 검색하다 우연히 찾은 곡인데, 가사가 영화의 주제와 소름 돋을 정도로 맞아떨어졌습니다. 저는 영화를 본 뒤 한동안 그 노래만 들었습니다. OST가 영화의 감정선을 이렇게까지 증폭시켜 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인상 깊었던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로키의 설계가 실제 항성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추론에서 출발했다는 점
  • 인형극 배우 제임스 오티스의 즉흥 연기가 로키의 감정선을 완성했다는 점
  • 스트라트와 그레이스의 관계가 단순한 지시자-수행자 구조를 넘어 복잡한 신뢰로 이어진다는 점
  • 영화 결말이 원작 소설보다 열린 구조지만, 지구의 밝기가 돌아왔다는 암시로 충분히 희망적이라는 점

NASA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제미니(Gemini)와 아폴로(Apollo) 프로젝트 참여 우주 비행사 30쌍 중 23쌍이 이혼했습니다(출처: NASA). 인류를 위한 영웅적 임무가 가정이라는 가장 가까운 것을 무너뜨린다는 아이러니가, 영화 속 로키가 에이드리언을 지독하게 그리워하는 장면과 겹쳐 보였습니다.

소련의 우주 비행사 블라디미르 코마로프는 우주선에 203개의 결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 유리 가가린 대신 탑승했고, 결국 귀환 중 낙하산 고장으로 사망했습니다. 미국 우주재단의 기록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남아 있는데(출처: Space Foundation), 그레이스가 지구로 돌아갈 기회를 포기하고 로키에게 운전대를 돌리는 장면은 이런 실제 이야기들과 겹치며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결말

 

인터스텔라처럼 철학적 무게감으로 짓누르는 영화는 아닙니다. 대신 유쾌하고 몰입감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강점입니다.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분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오히려 장르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도 합니다. 러닝타임이 길어 편집이 더 됐으면 했던 장면도 있었지만,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인상은 변함없습니다. 저는 원작 소설을 조만간 읽어볼 계획입니다. 영화에서 생략된 장면들이 책에서는 어떻게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참고: https://youtu.be/xJvrXbkpn6E?si=Gui_ivvwtPquJ7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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