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저는 VFX 회사에 재직하면서 조각도시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솔직히 제목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조각나는 게 꼭 드라마 속 주인공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영화를 드라마로 쪼갠 것, IP 원작 활용의 명암
조각도시는 2017년 개봉한 영화 조작된 도시를 원작으로 합니다. IP(Intellectual Property) 기반 제작 방식으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IP란 지적재산권을 의미하며, 지적 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모든 재산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미 시장에서 인지도와 팬덤이 검증된 원작 콘텐츠를 의미하기도 하며, 이를 새로운 포맷으로 확장하는 것이 최근 OTT 업계의 주요 전략 중 하나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IP 원작 드라마화는 제작 현장에서도 양날의 칼입니다. 원작의 세계관이 이미 설계되어 있어 VFX 작업 방향을 잡기 수월한 반면, 원작 팬들의 기대치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합니다. 실제로 조각도시 작업을 진행할 때도 원작 영화의 분위기와 드라마 시리즈 특유의 호흡감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내부에서도 많이 논의됐습니다.
최근 IP를 활용한 드라마화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OTT 플랫폼 중심으로 IP 기반 콘텐츠 제작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안정적인 시청자 확보와 제작비 리스크 분산을 동시에 노린 전략입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조각도시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작 IP: 영화 조작된 도시(2017), 오상호 작가 각색
- 장르: 사회파 스릴러 + 레이싱 액션
-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 핵심 서사: 누명을 씌운 위조 증거(Fabricated Evidence) 설계와 그에 맞선 탈출·복수 구도
위조 증거, 즉 Fabricated Evidence란 실제 존재하지 않거나 조작된 물증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수사 방향을 왜곡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드라마 속 악역 요한이 구사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인데, 피해자 태중의 DNA 정보부터 동선 데이터, 심지어 사생활 흔적까지 수집해 완전한 가짜 범인을 설계합니다. 저는 이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단순한 장르적 설정이 아니라 현실 디지털 포렌식 환경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포맷이 이 서사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호흡으로 밀어붙이는 편이 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드라마화를 통해 레이싱 시퀀스나 캐릭터 관계를 좀 더 공들여 쌓을 수 있었던 건 분명한 장점이었습니다.
캐스팅과 VFX, 현장에서 보이는 것들
조각도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던 논쟁 중 하나가 캐스팅입니다. 저도 예전 회사에서 이 이야기를 동료들과 꽤 많이 나눴습니다. 주인공 태중 역할의 지창욱과 악역 요한 역할의 도경수, 이 두 배우의 역할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이 현장에서도 꽤 있었습니다.
지창욱은 원작 영화의 주연이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을 이어받는 방식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요한이라는 캐릭터의 무게감이 도경수에게 충분히 실리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요한은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설계한 누명을 '조각'이라고 표현하고, 타인의 인생을 재료로 삼는 냉혹한 완벽주의자죠. 이런 역할에는 특유의 차가운 카리스마가 필요한데, 개인적으로 도경수보다 지창욱이 그 결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VFX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이번 작품은 프리비즈(Previs) 단계부터 상당히 공을 들인 현장이었습니다. 프리비즈란 Pre-visualization의 줄임말로, 실제 촬영 전에 컴퓨터로 카메라 앵글과 동선, 특수효과 배치를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레이싱 시퀀스처럼 다수의 차량과 배우, 카메라가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장면에서는 이 사전 계획 없이 촬영하면 현장이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 작품이 제가 그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한 프로젝트였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레이싱 씬을 보면 세팅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 기술의 발전도 이 드라마의 핵심 배경입니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디지털 기기에 저장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범죄 수사나 법적 증거로 활용하는 기술 분야를 말합니다. 드라마 속 요한이 사건 현장을 3D 스캔하고, CCTV 데이터를 분석해 타깃을 선별하는 장면들은 실제 디지털 포렌식 기술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디지털 증거의 무결성 확보와 위변조 방지 기술이 수사 환경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인터넷진흥원).
이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 콘텐츠를 넘어 시의성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데이터를 조작해 완전한 가짜 범인을 만드는 일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

세월이 흐르고 나서 돌아보니 조각도시라는 제목이 다르게 읽힙니다. 작업 당시엔 그냥 드라마 제목이었는데, 지금은 저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진짜 같은 가짜와 가짜 같은 진짜 사이에서 살다 보면, 사람도 어느새 조각나고 다시 붙여진 무언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조각도시가 불편하게 와닿는다면, 아마 그게 정상적인 반응일 겁니다. 지금 디즈니 플러스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한 번쯤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